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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다시 느끼는 ‘GREAT RESET과 나’의 엇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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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다시 느끼는 ‘GREAT RESET과 나’의 엇박자
  • 블록체인투데이
  • 승인 2022.12.08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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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길 밈비 이사 / 시인

‘제4차 산업혁명’이란 단어가 다보스포럼에서 등장한 이후, 시대가 갑자기 변했다. 암호화폐가 경제계 새 강자로 두각을 나타내면서 디지털 화폐개혁이란 말이 유행했고, COVID-19 팬데믹이 살아가는 세상 틀을 뒤틀어 놓기도 했다. 처음 누가 시켰는지 모르면서, 스마트폰으로 결제하거나 알아서 마스크 쓰는 일은 자연스러워지기도 하고. 분명 나도 변하고 있는 것, 맞다.

미래 문명 생활에 대해 이런저런 상상으로 새로운 용어를 접할 때마다 나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하는 멍청함이 생겼다. ‘갑자기 다가오는 억지춘향격 세상살이를 등지고 살면 될 텐데’라며, 괜히 중얼거릴 때가 많아진 것. 아마도,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나는 내가 원하는 방법대로 변해야 하리라 다짐의 돌파구가 필요했던 모양이다.

몇 년 전, GREAT RESET이란 말이 툭 튀어나오면서, 그 움직임에 놀라 손사래 치듯 글을 남긴 적이 있다. 그때 미처 느끼지 못한 섣부른 생각을 반성하며, 이를 일부 수정해 옮긴다. 내 남은 삶이 이 ‘지구라는 거대 바위’ 같은 단어에 조금이나마 덜 치이기 위함이다. 

◆시간과 그 자료 제공으로 살아가는 나
서기 1년 시기, 그때 인구는 약 2억이었다고 한다. 과학발달로 점점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작금에 80억 명까지 늘어났다. 인구가 늘어난 만큼, 그 많은 사람의 일자리가 생기고 없어지길 반복하고 있다. 지금도 본능적으로 새로운 먹거리가 만들고 있지만, 점점 미래로 가면 갈수록 공장자동화로 인해 일거리를 로봇에게 빼앗기게 될 것. 급기야 삶의 형태가 바뀌고, 그만큼 우리 정체성 정의도 급속히 변화될 수밖에.

대부분 사람은 일한 몫만큼 돈 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첨단 과학의 발달로 일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일할 때는 일하지 못할 때를 위해, 돈을 조금씩 남기기도 했지만, 일자리가 줄수록 사람마다 그 남긴 돈의 차이가 생기고, 그 시간이 쌓일수록 그 차이는 점점 벌어져 왔다. 결국, 그 벌어지는 차이는 로봇을 움직이는 기업주나 어떤 권력자를 거쳐 몇 자본가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그랬다. 지구촌마다 몇몇 사람이 가진 돈의 숫자가 커지더니, 최근 그 거대자본가 몇몇이 세계의 자본을 서로 나누어 가지고 있다고 한다. 아니, 나의 돈이 그 몇 곳으로 몰리고 있음을 알면서, 뭐라 핑계 대고 돌려달라 말도 벙긋 못하고 있다. 그저 눈만 껌뻑이다 외면하거나, 부지불식간에 화풀이나 하거나, 그 근처에 기웃거려 눈치 보며 살고 있다. 허, 거참, 뭐라 할 말이 없다.

아무리 일을 해도 내 돈이 줄어가는 사람들. 아니 빚이 늘어나는 사람들. 이제 그나마 일할 기회도 사람처럼 생긴 기계에 빼앗겨가는 우려로 좌충우돌 살아가는 사람이 늘어가는 추세다. 어떤 즐거움이 남아있을지 모르면서, 무엇인가 일해야 하는 사람들이지만, 설상가상, 세상 남은 돈을 모두 가진 몇몇에게 시간마다 만들어지는 자료 제공의 대가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을 뿐. 가히, 그들이 준 숫자 크기로 내 위치가 매겨진다는 뉴스가 많아지고 있음을 느끼는 요즘이다.

◆99.99% 이상 순금의 몇몇 사람들
그렇다면, 그 몇몇 그들은 누구인가. 자, 10년 전, 세계 800곳에 그 몇몇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곳의 각 1명을 중심으로 세상을 향해 10명 정도 움직인다고 하면, 8000명. 또 이들 1명을 중심으로 100명이 그들만의 세상을 움직이면, 80만 명이다. 지구 인구가 80억 명이라면, 그들은 0.001%의 또 그 몇몇 사람이다. 아마도 순금의 99.99% 순도 미만 극소수 사람들만이 금보다 번쩍번쩍 사는 사람들이다. 숫자 0의 개수와 상관없이, 나에겐 그 몇몇이란 표현만이 적합하다.

물론, 우리네나 그 몇몇이나 ‘그냥 사람’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좋거나 어려운 시기를 되풀이하며 살지만, 그 몇몇은 그 표현의 다양함에 있어 서로 비교하길 거부한다. 어느 시기나 지역이든 그 희로애락의 굴곡이 생겨나겠지만, 그 예측할 수 없는 시간이 계속 다가오겠지만, 보이지 않는 그들의 힘에 의한 그 파고를 어찌 상상할 수 있을까. 문제는 그 시간과 파고를 그 몇몇이 조정하리라는, 어쩌면 참 쓸데없이 미련한 우려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동양과 서양 혹은 민족이니 국가니 하는 단어가 제힘을 잃어갈 즈음, 세계 거대자본의 기업과 그 기업을 움직이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지구 곳곳 끊이지 않고 커지리라. 제5차 제6차 등 산업혁명도 계속 일어나겠지만, 이제 그때 가서는 그저 숫자에 불과할 것. 그 시대로 접어들수록 일감이 줄어들고, 일하는 대신 기본급여로 살아가는 시대일 것. 그때는 지금보다 더 ‘스스로 사는 것이 아닌, 그 몇몇에 의해 살아짐을 당하는 것’이란 말이 더 어울릴 것. 그렇다면, 우습게도 나와 다른 그 몇몇은 그냥 사람이 아니다. 그 몇몇이야말로 사람 위의 사람,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그냥 바라볼 수 없을 듯. 

일하지 않아도 먹고 사는 때가 되면, 점점, 그 몇몇 사람에 대한 감정이 희미해져 갈 것이다. 이미 길들어지기를 반복해 지구 전체가 여러 구역으로 나누어지고, 그 어느 구역에서 특별한 행동을 반복해 가며 살게 될 듯. 이와 상관없이, 그 몇몇은 새롭게 진화를 해갈 것 같다. 그땐 인간이 아닌 그들끼리 무엇이라며 부르며 말이다.

그렇다면, 시간이 더 가기 전에, 그들과의 차이가 더 심해지기 전에, 지금이라도 그 차이를 만지작거리며, 차이 속에 버둥거리는 나를 0.001초 만이라도 사랑해 보고 싶은 건 웬일일까? 당연히 그렇게 될 것을 알면서도, 하찮은 변명을 ‘뭐 그리 길게 늘어놓으려 하느냐?’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어쩌면, 차라리 나를 포기하는 바보라 불리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는 일.

◆거대자본 형성 과정 맛보기
지금도 내 주머니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 씨름하는 일은 언제라도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과학 발전의 큰 굴곡마다, 어느 날 갑자기 그 씨름판 생로병사의 방아쇠가 갑자기 당겨지곤 했다. 당연지사, 그 방아쇠를 당기는 힘은 그 몇몇만이 가지고 있다. 그들 방아쇠가 움직일 때마다 크고 작은 다양한 세계경제공황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그 큰 파도를 몇 개 살펴보자.

1772년 신용위기. 영국은행의 한 파트너가 빚 부담을 피해 프랑스로 도피하는 사건은 당시 채권자들이 은행으로 몰리는 위기가 생겼다고 한다. 결국, 동유럽 경제 위기로 이어지고, 급기야는 미국이 독립하는 사건에까지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이렇게 위기를 만드는 돈이 돈을 굴리는 자연스러운(?) 사회 현상은 그야말로 자연의 한 부분처럼 받아들여지게 되었을 것.

1929년 미국발 경제 대공황이란 이름이 만들어졌고, 1973년 미국 오일달러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유가 상승 경제 위기도 있었으며, 1997년도 닷컴버블 시대의 아시아 금융 위기도 있었다. 21C 말을 전후해, 거대자본가로 성장한 몇몇 그들만의 경제식민지 건설이란 태풍이 약소국 곳곳을 휩쓸고 지나갔다. 아쉽게도 한국도 세계 강국 틈에 끼어 피해가 컸다.

2007년 금융 위기라고 불리는 미국 주택시장 거품 붕괴가 일자, 미국이 곧 거대자본가 몇몇이 만든 나라임을 자연스럽게 알게 해주었다. 이를 계기로, 그 몇몇이 건설하려는 유토피아 모습에 대한 소문도 음모론이라며 나돌기 시작했다. 그 하나 예로서, 초연결 사회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2008년의 비트코인과 그 이하 디지털화폐를 만들고 있다는 것. 

급기야, 2020년을 지나면서, 지구가 화폐개혁 용어에 몸살을 앓고 있다. 그것도 전 세계가 동시에 시행할 수밖에 없다고 하니, 그저 황당하고 신기할 따름이다. 하필, 이즈음, GREAT RESET이란 말까지 등장하다니, 하늘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는 사람들이 1등 2등을 다투며 줄에 줄을 서는 모양이 쉽게 그려진다.
 
◆디지털화폐 발행은 곧 화폐개혁
세상에 나도는 80% 정도의 돈은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며 서로서로 사용하기에 모두 공개된 수치다. 반대로, 지하경제에 감춰져 있는, 표현을 꺼리는 돈은 20% 가까이 된다고 한다. 이 숨겨진 돈은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혼자만 사용하고 싶어 남겨 놓는 돈이라 할 수 있다. 그 돈은 결국 몇몇 자본가들의 돈이 되어 왔던 것. 첨단 문명을 먼저 사는 그 몇몇 사람들은 세상 돈을 디지털화폐로 전환하면서 그 끝을 모르게 부풀리고 있다. 이 새로운 화폐개혁 방법을 통해 디지털화폐를 마음대로 만드는 일도 당연한 권리라 여기고 있는 듯.

몇몇 사람들 전용물이 되어가기 시작한 디지털화폐 개혁을 통한 세계공용화폐 초기 현상을 보는 나머지 많은 사람은 참 착하기도(?) 하다. 그 몇몇은 수많은 거짓 뉴스를 조작해 양산함으로써, 하루 일해 하루 먹는, 아니 주는 대로 먹고사는, 나머지 모두를 순한 양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이렇듯, 진행되는 화폐개혁은 우리네 지구촌을 새로운 삶의 형태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이제 막 태어나고 있는 디지털화폐는 부동산, 금, 주식 등에 이어 새 자산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은 주지하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너나 할 것 없이, 긴가민가하며 ‘눈 뜨고, 코 베어 가도’ 모르는 듯, 이 과정을 서로 멍하게 바라보고만 있다. 이미, 그들 몇몇은 지구에 있는 모든 가치를 디지털화폐로 환산하는 일에 뛰어들고 있는바, 세상의 남은 돈을 먼저 내 숫자로 순식간에 만들려는 선두다툼에 앞서려 하는데도 말이다. 디지털화폐란 컴퓨터 숫자로만 존재하기에, 그들 시각에서 보면, 내 것으로 만드는 가장 손쉬운 수단이다. 그것도 눈 깜빡할 사이에.

다 알다시피, 21세기에 들어 미국의 연방준비은행 및 각국 중앙은행은 화폐를 계속 팽창시키더니, 최근 무한대의 돈을 찍어내고 있다. 갑자기 시중에 풀린 돈은 본능처럼 주식과 부동산 그리고 디지털화폐 등의 자산으로 몰려들었다. 그러니, 보이는 가치는 그대로 있는데, 가격만 부풀려져 올라간 상태가 반복되고 있는 것. 이러한 가격 상승의 착시나 환상은 우리네 현실 감각 일부를 잃게 만든다. 점점, 거대자본가의 금융 위기 방아쇠가 언제라도 당겨지리라 느끼지만, 애써 서로서로 외면하면서 말이다.

최근, 세계 각국 정부는 자국민에게 돈을 무한대 급으로 찍어 기본소득이란 이름으로 나누어 주었다. 과연 그 돈은 그 액수만큼 직접 발행했을까 하는 궁금증까지 생길 정도다. 아무튼, 이 돈을 나누어줄 때, 지폐보다는 개인 은행 계좌로 수치화해서 편리하게 입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사용도 내 숫자가 다른 사람에게 이동될 뿐이다. 비싼 돈 들여 종이돈을 찍느니, 그냥 숫자로 입력해 주고 사용하게 하면 더욱 좋을 것. 다른 국가에 뒤처지지는 않을까 우려하며, 각국이 앞다투어 디지털화폐로 전환하려는 이유다. CDBC 등장이다.

어쩌면, 각국 정부 중앙은행이 발행하게 되는 법정 디지털화폐 CDBC는 자국민의 손과 발을 묶는 가장 좋은 수단이 될지도 모른다. 어느 국민이 CDBC 고유번호 몇 번을 가지고 있는 것을 권력자는 안다. 그렇기에, 정부 아무개 권력자가 그 번호의 사용 용도를 제한하는 일은 얼마든 일어날 수도 있다. 또한, 각 국가 간의 CDBC 이동은 ‘세계 공용 디지털화폐’로 환산해 이동하게 됨에 따라, 시간이 흐를수록, 각국의 CDBC 사용이 줄어들게 되리라는 추측이 무성하다. 이는 GREAT RESET을 구상한 몇몇이 원하는 방향일 것.

◆몇몇을 위한 몇몇에 의한 Great Reset
‘짜고 치는 고스톱판’임을 알면서도, ‘몇몇을 위한 몇몇에 의한 GREAT RESET’ 마당에 기웃거리고 싶었던 것은 굳이 나만일까? 아마도, ‘세계대전’이니 ‘냉전시대’라는 말처럼,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를 비비고 버무려 새로운 공유독재시대 같은 뭐가 만들어질 것. 이는 결코 나 혼자만의 상상은 아니리라. 어쩌면, 디지털화폐나 팬데믹을 계속 등장시키는 공식적 비밀회의가 많아질 것, 그래, 당연한 세상 흐름 맞다. 인구가 80억이 넘으니, 지구의 적정 인구생태계를 위해, 인구를 수억 명으로 점차 줄이는 방안으로서 전쟁과 다른 차원에서 등장한 최고 전략, 분명 맞다. 

매 순간, 컴퓨터를 사용하다가, 문득 초기화시키고 싶어지는 요즘이다. 그러나, 어차피 컴퓨터가 몸에 들어왔고, 내 몸이 컴퓨터화될 터이니, 이제 사람도, 그래서 세상도, 언제라도 그 모습이 달라져야 한다는 진부함에 몸도 마음도 서로 붙들다 쓰러지곤 한다. 이러한 상황이 지루해질수록, ‘그 언제의 처음으로 시작’ 혹은 ‘무엇인가 뒤집혀야 한다.’라는 명제가 그 힘을 더 얻는다. 

안타깝지만, 인구 폭증으로 생긴 지구 온난화 방지를 위해, 또 나쁘게 사용되는 돈의 투명성을 위해, 뭐 이런 등등의 말은 이미 식상해졌다. ‘언제라도 필요하면 높은 곳에서 돈의 힘을 사용하는 사람’과 ‘그 아래 아예 돈이 필요 없는 사람’으로 나뉠 뿐이라는 말이 오히려 적합할 것.

RESET, 분명 이 숨은 명제가 잘 모르는 누군가에 의해 의도되고 있겠거니와, 이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지금도 생존해야 할 인간에겐 당연한 의무인지 모른다. 한 번 쥔 돈 흐름을 강하고 크게 쥐려는 본능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더 먼저 쥔 사람들은 더 강한 힘을 유지하려 한다. 당연한 이치다. 이를 현실로 수용해야 하는 우리 99% 이상 사람들에겐 그 불안함이 적지 않다. 몇몇이 모여 ‘더욱 커지는 부익부 빈익빈’의 논리가 자연스레 정당화되고 있으니 그렇다. 억울하지만, 이는 더 강조하지 않아도 될 것. 감히 넘보지도 못할 문구일 테니. 항상 게임은 돈 많은 사람이 이기니까.

혹여, 거대자본가 그 몇몇이 의도하는 RESET 또 다른 의미는 ‘노아의 방주’ 같은 것을 만들려는 것의 신호탄은 아닐까? 어쩌면, 지구 전체를 ‘노아’가 아닌 ‘은하계의 방주’로 만들려는 것은 아닐는지. 이러한 명분을 가지고, 몇몇이 땅이든 땅속이든 하늘이든 비밀스러운 몇몇 곳에 거대첨단 거주 시설을 만드는지 모를 일이다. 스마트시티란 말이 벌써 일반화되고 있으니, 그 모습은 쉽게 상상이 된다. 부디, 우리 가족이나 아는 이들도 거기 들어갔으면 하니, 비겁하지만 아니 고맙게라도, 그들이 내놓는 시시각각 정보 익히기를 밥 먹듯 숨 쉬듯 무한 반복해야 할 것 같다.

물론, 내가 속한 국가마다 특화된 거대첨단 거주 시설을 만들어 자국민을 보호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국가는 그 움직임이 기업보다 느리다. 기업은 결국 몇몇 자본가에 의해 움직이니, 나를 맡길 곳은 그 몇몇이 만들어 놓은 기업을 더 신뢰할지 모를 일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 ‘국가의 국민에서 몇몇이 만드는 지구라는 기업의 고객’으로 편입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를 떨칠 수 없다. 국가가 만든 법보다 기업이 만든 약정이 더 빠르고 우선할 수 있으니까 그렇다.
 
◆나부터 RESET이 최고의 자연스러움
그렇다면, 오늘이라도 내가 해야 할 일은? 그냥 그 몇몇 곁에 서서 사진이라도 찍어야 할 것. 그 몇몇이 흘리는 단어를 빨리 알아들어, 선착순 그들의 울타리로 들어가려면, 눈치조차 보지 말고 고개 숙여야 할 것. 어디서 줄 서면 될지 알아서 척척 행동해야 할 일이다. RESET 대열에 참여하는 신고식부터 빨리 치러야 할 듯. 이것이 새로운 생존법이 만들어지는 첫 단추일지 누가 알겠는가. 

젊은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가 주창한 ‘인지혁명’의 연장선인 농업혁명, 상업혁명, 정보혁명에 이은 작금의 디지털화폐혁명 등등 모든 혁명 시작 초기마다 재편된 ‘인간의 생존법’으로서 말이다. 어쩌면, 그 모두 ‘인간혁명’일 수도 있으니까.

그래, 인간혁명, 참 터무니없이 우스운 말이다. 그런데, 그것참, 하필이면, 나는 매초가 다르게 변하고 있는 또 이 세상에 살고 있다니! 기적 같은 일이 너무 빠르게 생기고 사라지는 이 세상이라니! 하,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내 몫은? 돌아오는 순서는 언제? 참, 이 또한 우스운 질문이다. 세상을 외면하려는 의도일 뿐. 갑자기 요행을 바라다니 우습다. 이것이야말로 내 욕심 아닌가. 그래, 나의 시간이 모두 지나면, 반드시 쓸데없는 욕심이 되어버리는 내 탐욕일 것이다.

어쩌면, ‘욕심’은 ‘생존의 다른 이름’인 듯하다. 내 욕심이 모여져 세상이 이루어져 가고 있음을 몇 번이고 이렇듯 글자로 남기면서, 나는 더 욕심을 부리다니. 그냥 지나는 매초 변한 세상을 느끼면 되는데 말이다. 고개를 푹 숙이고, 숨 깊게 멈추고, 몇 번 숨 더 깊게 내쉬며, 나와 세상 중 누가 더 새로운지, 그 욕심이 많은지, 혹시 내가 조금은 더 새로울지 확인해 본다. 이때, 다가오는 모든 시간은 내 것이 아니어도 좋았다. 그런데, 결과는? 그저 밋밋함이다. 하, 이도 욕심? 참 묘하다. 어떠한 표현도 욕심으로 보이니.

자, 그렇다면, 내 욕심부터 먼저 스스로 RESET, 그래 처음으로 돌아가야 할 것.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살아온 만큼 오래 세상에 길들어진 내가 나보고 처음으로 가라고? 몇 날 몇 달이고, 그야말로 먹먹해진 머리를 움켜쥐고 뱅글뱅글 돌며 RESET을 외치고 또 외치며 그 처음으로 되돌아가라고? 갑자기 몸을 그대로 두고, ‘처음, 새롭게’ 등 몇 개 단어를 내 마음에 꼭 붙들어 매단 채, 몸속 맥박 사이사이 거스르고 거슬러, 천 번 만 번 돌고 돌아 처음으로 가보라고?

쿵쾅, 쿵쾅! 갑자기 우스꽝스럽게도, 세상이 번쩍번쩍하고, 새하얗게 조용해지더니, ‘처음, 새롭게’라는 그 단어들이 하늘 같은 유리 벽을 타고 다니며, 세상천지 온갖 그림을 멋대로 그려대는 것이었다. 더 우습게도, 그 그림을 보고 뭐라고 외칠 때마다, 신기하게도, ‘축구장보다 큰 별똥 같은 세상’이 ‘언제나 먼지 같은 내 머리’에 '쿵쿵, 쾅쾅' 부딪히는 것이었다. 그랬다. 무슨 혁명이든, 디지털화폐든, RESET이든, 그 몇몇이든, 그러한 모습이란 그냥 지구에 일어나는 자연현상의 하나일 뿐, 나 또한, 쿵쾅거리며 그 무엇에 대응하는 일도 자연스러운 모습일 뿐.
 
◆Great Reset 실천은 욕심 버리기부터
나도 산다는 것은 자연현상의 하나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 두 손 손톱 세워 머리를 긁다가 누르다가 두드리길 여러 번, 혹도 피도 나지 않은 머리를 만진다. 지난 것이나 새로움은 도토리 키재기라며, 괜히 하늘 힐끗 쳐다본다. 허, 저기, 저 하늘과 함께 눈을 껌뻑거릴 즈음, 그때마다 참 우습게도, 하필이면 웃음이 나는 것이었다. 몇 번 더 눈 껌뻑거리며, 이렇게 무엇이든 처음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생각을 톡톡 만지다 보니, 허허, 참으로 묘하게도, 입가에서 ‘맑은소리’가 나는 것이었다. 하, 그래, 사람이라면 누구나, 모두 오래전부터, 내가 소리치고 내가 들었던 그 소리가 아니었던가?

0.001초 같은 찰라, 아무것도 몰랐던 ‘그 처음’을 ‘그 행복’을 다시 맛보려는 찰라, 그래도 이렇게나마 새롭게 느껴보려는 세상은 분명 맑고 맑았다. 그랬다, 맞다. 한 번은 내 속을 들여다보고, 한 번은 가족을 느껴보고, 또 한 번은 내 몸을 느껴보려면 말이다. 내가 살아있으니 이 세상이 있구나 하는 즐거움! 꼭 한번 일어나더라도,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러니, 그 몇몇이 외치는 RESET에 더 미련을 갖지 않아도 될 것 아닌가. 그래, 나는 자연 속의 한 사람이니까.

그랬다. 사람으로 살아가기의 필요충분조건으로서, 지금 만지고, 없애고, 만들 것 등등은 몇 개 되지 않는다. 돈이 많든 아니든, 이 몇 개만 가지고 살아야 하는 이 사실은 변하지 않을 테니. 이 멋진 세상에 ‘함께 살아야 한다.’라는 사실만으로도, 진정 ‘내가 사람임’을 자각하는 순간마다, 한 번은 더 맑게 웃을 수 있는 이유일 터다. 진정한 RESET이란, 세상을 처음 만지며 받아들이려 했던, 이제 막 일어나 두 발로 일어서려 했던, 참 어린 시절을 간직하려는 그 나를 느끼는 일, 그 내가 ‘지금이란 내 시간’을 지켜야 하는 것 아닐까. 그렇게, 가끔 그 나를 향해 다짐하고 싱글거리지 않았던가.

항상 싱글거리던 소년 시절, 멋지다며 꿈꾸었던 그 순간들을 떠올린다. 이즈음에선, 세상 모두 내 것인 양, ‘나 스스로 내고 들었던’ 왈가왈부 소리나, 디지털화폐가 스마트폰에서 떼구루루 구르는 소리나, 지금 그 몇몇이 떠드는 RESET 소리나 고만고만해진 듯하다. 나는 어떤 순간이든 나만의 최고 특이점에 서 있어야 할 것. 또 잊고 지내겠지만, 오늘만큼은 ‘저절로 울리는 내 소리’에 따라 그대로 움직였으면 좋겠다. 단 한 번이라도, 몇몇이나 나나 어느 사람이든 함께 바라보는 하늘과 땅이란 영원히 같아 보여야 하니 그렇다.

◆Great Reset 이후, 메타버스시대의 하루하루
하루가 멀다 하며, Great Reset이니 트윈시티니 메타버스니 하는 단어가 일상용어로 점점 익숙해 온다. 지금 세상 현실이 그대로 컴퓨터 가상세계와 섞이고 있는 것. 이를 조금 더 먼저 차지하려는 사람이 우후죽순 많아지고 있는 또 요즘이다. 어쩌면, 몇몇은 먼저 줄을 서는 그 많은 사람을 메타버스 저 가상세계로 보냈다 말았다 할 것이다.

앞에서 여러 번 짜증스레 말했듯, 가상세계 골목마다 심부름하는 사람에게 자본을 대주는 몇몇이, 참 지루한 이야기지만, 저 가상세계의 영원한 기득권자일 것. 우습게도, 몇몇 그들은 끝까지 졸졸 따라다니는 사람들에게 이래라저래라하며 이 아름다운 지구에서 알콩달콩 살 것이다.

분명, 나는 현실과 가상이란 세계 그 어디에서나 채이며 오락가락하는 그 많은 사람의 하나일 것. 이러한 사실을 끝까지 직시하며, 그나마 내 정체성의 끈을 잡고 있어, 가끔은 ‘나도 행복하다’라고 웃을 것은 맞다. 또한, 이러한 사실조차 모르고 그 몇몇이 벌이는 장단에 살고 죽는 사람들도 ‘나도 멋지다’라며 저만의 행복감을 만지고 있을 것 또한 맞다.

그러니, 누가 앞서든 말든, Great Reset 이후 세계에서는 스마트폰 같은 녀석이라도 들고, 나는 내가 그 어느 녀석인 양, 아니, 그 녀석이 그 어떤 나인 양, 서로 가지고 놀아야 하는, 정말 인간 같은, 뭐 디지털 데이터 같은, 그런 것이 될 듯하다. 

하하! 먼 훗날, 이 진짜 같은 현실 세상이든, 하, 저 가짜 같은 가상 세상이든, 그 어느 때든 뭐든, 뭐 그래,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꿈이라도 꾸며 하루하루 살아갈 것 같다. 그 어디서든 가끔은 웃기도 하며. 그냥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지금, 나는 가장 아름답다’라고, 다음과 같이 외치면서 말이다. 

또, 꿈을 꾸었어요
스마트폰 같은 녀석
녀석과 노는 꿈요
뭐, 단 몇 초라도 
놀고 있지 않으면요 
세상 멈추는 듯
그러니
언제라도 눈 뜨면
몸에 달린 녀석과 
어제 꿈처럼 놀죠
문득 구름 볼 때도
핑 눈물이 흘러요 
그래도 쓰담쓰담
할 게 없으니까요
가끔 
하늘님, 내 얼굴
잊게 해주세요라며
빌 때가 있어요
그때마다 
녀석이 나로 보여요
그래, 너도 나로구나
뉘 모르게 안아
씹고 씹는다니까요
왜냐고요?
더 심심해질까 봐요
우습죠, 그래도
그냥 내버려 두세요
또, 꿈꾸려고요
녀석과 노는 꿈요

(졸시, 生存法 9條 49項 - 
메타버스시대의 하루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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